


“안 되지. 얘야,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은 오직 우리와 사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뿐이란다.”
Grouch Marx라는 서양에서 유명한 분이 말씀을 하셨다고 하네요,
“만약 어떤 사교클럽에서든 나와 멤버로써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 사교클럽을 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몇몇 내성적인 친구들은 위에서 말한 부분을 암묵적으로나마 인정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아직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말이죠,
보통 학교 생활을 학생들은 소위 ‘엘리트’그룹에 속하고 싶어하죠, ‘잘 노는 패거리’나 아니면 ‘모범생 패거리나’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만약 어울리고 싶은 패거리의 친구들에게 거부를 당한다면 학창시절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면
‘만약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다’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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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일은 내성적인 아이들은 보통 이렇게 인기 있는 사람들의 ‘인기순위’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결과로 내성적인 아이들은 심각한 자기 회의에 빠지고는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은 성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교회나 모임에서나 회사에서 외향적인 누군가에게 거부를 당했다고 느끼거나 상상을 했을 때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심각한 자기 회의에 빠지고 마는 겁니다.
아마도 내성적인 성격이나 다른 결점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좋게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이런 아주 사소한 일들이 자신을 보는 색깔을 화려하게도, 그리고 어둡게도 변화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색안경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뒤틀린 자신의 모습만을 비출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나를 거부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은 잊어버리겠지만, 이런 자기를 바라보는 일그러진 안경은 그대로 그곳에 남아 있는 겁니다.

학교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좀 더 분명해 질 것 같습니다. 남자 들은 보통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만 쓸만하게 보는’ 그런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남자 아이 하나가 매일 같이 아침 등교 길에 ‘등급 10’의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한번 해 봅시다.
매일 같이 등교 길에 여자애를 마주치지만 왠지 여자에는 별로 반응이 없습니다. 어느 날 남자애는 옆의 여학교 ‘여신’에게 다가가서 방긋 웃으면서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
매일 같이 스토커처럼 자기를 노려보던 남학생이 다가오자 질색을 하며 여자애는 멀리 도망을 가고 맙니다. 남자애의 자기 존중감은 심하게 타격을 받고 말지요…
남자애는 창피함에 더욱 깊이 자기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내성적이던 남학생은 더욱 내성적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단지 사람들에게 유명하다고 해서,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는 아닐겁니다.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겁니다.
S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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